2막: 카톡방 초대, 미지의 프로필
그녀를 마주친 날로부터, 어느덧 사흘이 흘렀다.
그러나 선랑은 아직도 그날의 장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보였다.
아이보리 코트 자락, 바람에 흔들리던 머리카락, 그리고 아이폰 뒷면에 붙은 작은 행성.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형상을 찾았다.
그녀의 이름조차 모른 채, 어떤 대화도 없이 흘러간 만남.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이 그의 일상 위에 깊은 잔상을 남겼다.
초승달 모양의 프로필 사진.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수십 번 넘겨봤지만, 아무 단서도 없었다.
그녀가 프로필을 비공개로 설정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추측까지 떠올랐다.
그렇게 망상은 깊어지고, 현실은 흐릿해졌다.
오후 2시, ‘미디어 콘텐츠 기획’ 수업 시간.
강의실은 기획안 발표 준비로 분주했다.
선랑은 발표 자료가 담긴 PPT 파일을 폰으로 넘겨보며 머리를 짚었다.
도표, 키워드, SWOT 분석, 트렌드 키워드… 그 어떤 단어도 그의 머릿속에 박히지 않았다.
조별 과제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메스꺼웠다.
그때, 뒤에서 날아온 익숙한 목소리.
“야, 나선랑!”
돌아보기도 전에, 활기찬 존재감이 곁에 내려앉았다.
경희.
그의 사촌 누나이자, 같은 학과 선배.
웹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미디어학과를 휘어잡는 인물.
늘 최신 유행과 빠른 소문을 선도하며,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의 진짜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사람.
경희는 익숙하게 아이패드를 들고 무언가를 빠르게 두드리며 선랑의 어깨를 툭 쳤다.
“너 아직도 그 조원들이랑 삐걱대냐? 지난번에 내가 말한 대로 해봤어?”
선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대충 하고 싶은데 다들 자기 주장만 하고… 말 섞기가 피곤해.”
경희는 혀를 찼다.
“답답한 녀석. 그래서 내가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
“...무슨 조치?”
그 순간, 선랑의 갤럭시 폰이 진동과 함께 알림음을 뱉었다.
‘카톡!’
화면에 뜬 메시지.
[경희(나)님이 나선랑님, 김현주님 외 2명을 초대했습니다.]
[채팅방 이름: 미디어 콘텐츠 기획 - 창의 조]
선랑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툭’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김현주.
그 이름 세 글자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익숙한 이미지 하나가, 조용히 그의 시야를 파고들었다.
초승달.
검은 하늘 위, 은은하게 떠오른 그 곡선.
그녀의 프로필 이미지와, 완벽히 일치했다.
떨리는 손끝으로 채팅방을 눌렀다.
그 안에는 네 개의 프로필 사진.
자신의 웃고 있는 증명사진, 경희의 셀카,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
그 중 하나—
바로 그 이미지.
밤하늘, 초승달, 무표정한 디지털의 침묵.
선랑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폭발처럼 터졌다.
“김현주…”
그는 작게, 거의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어? 너 벌써 확인했네?”
경희가 폰을 힐끗 보더니 해맑게 말했다.
“내가 너네 조 조정하려고 교수님께 건의했어. 현주 쟤, 미디어 아트과 에이스야. 너네 조 진짜 득템했지.”
선랑은 숨을 들이켰다.
아직도 경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현실로, 이름을 가진 존재로 눈앞에 나타났다.
“쟤, 작년에 디지털미디어 공모전에서 대상 받았잖아. 조용해서 잘 안 보이긴 해도, 완전 실력자야. 약간 아싸 기질은 있는데, 너랑 은근 잘 맞을 수도 있겠다?”
경희는 손가락으로 아이폰 화면을 보여주며 웃었다.
“게다가 쟤도 아이폰 유저라 에어드롭으로 파일 주고받기도 편하잖아~”
선랑은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 확신했다.
아이폰.
조용함.
미디어 아트.
그리고— 그 초승달.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채팅방을 더 살펴보니, 다른 조원들은 이미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
“네! 함께 힘내봐요!”
그리고—
김현주의 메시지.
[김현주: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모티콘도, 말장난도, 허세도 없는 문장.
단정하고 조용했다.
기계적인 듯,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기묘한 단절감이 있었다.
선랑은 잠시 손가락을 멈췄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결국 그는 평범한 문장을 입력했다.
[나선랑: 안녕하세요.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너무 정중해서 오히려 어색한 인사.
한참을 고민하다 이모티콘 하나를 붙였다가 다시 지웠다.
그녀의 반응은 없었다.
조용한 ‘읽지 않음’ 표시가, 작은 숫자 ‘1’로 박혀 있었다.
그 숫자 하나가 그의 눈앞에서 마치 깜박이는 불빛처럼 느껴졌다.
읽지 않음.
읽히지 않은 메시지.
읽히지 않은 마음.
그리고 읽히지 않는 그녀.
2025.05.26 - [<소설> 혼자뜨는 달 2025] - 제1권: <밤의 시작, 달의 그림자> (3)
제1권: <밤의 시작, 달의 그림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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