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혼자뜨는 달 2025

제1권: <밤의 시작, 달의 그림자> (4)

대표수석연구원 2025. 5. 26. 18:37
728x90
반응형

4막: 불청객의 등장, 어두운 그림자


김현주와의 대화는 나선랑에게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익숙하면서도 늘 새로웠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따뜻했다.

과제 이야기를 주고받던 카톡창에는 가끔 현주가 찍은 하늘 사진이나
짧은 작업 영상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녀의 감각은 단순히 예술적인 것을 넘어,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침묵과 사이사이의 공백마저 의미를 품고 있었다.

그녀는 늘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깊고 정교했다.

그런 그녀를, 선랑은 매일 더 알아가고 싶었다.


주말 오후.
선랑은 단골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다.

창밖의 낙엽은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고, 카페 안에는 재즈 음악이 낮게 깔려 있었다.
현주가 공유해준 재즈 앨범이었다.

선랑은 갤럭시 폰으로 재즈를 들으며, 현주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던 그때—
갑작스레, 스마트폰 화면 상단에 메시지 알림이 떴다.

[알 수 없는 발신자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처음엔 스팸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딘가, 기묘한 직감이 그를 멈추게 했다.
가슴 속에 작은 바늘이 찌르듯 불길함이 솟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열었다.

[니 옆의 그 달, 빛이 아니라 그림자일 뿐이다. 잘 생각해라. 계속 곁에 있으면 다친다.]

선랑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달'.
그 단어 하나가, 무엇보다 강하게 가슴을 쳤다.
현주. 그녀의 프로필, 그녀의 상징.
바로 그녀를 지목한 것이 분명했다.

그 메시지는 단순한 조롱이나 스팸이 아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보낸 협박이었다.


그는 즉시 발신자를 확인했지만,
번호는 ‘비공개’, 혹은 해외 발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추적도 불가능했고, 차단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불쾌함이 가슴에 서려드는 와중에도,
그는 더 큰 고민에 빠졌다.

‘이걸… 현주에게 보여줘야 하나?’

그녀는 한없이 조심스럽고, 세상과 거리 두기를 선택한 인물이었다.
이런 메시지가 그녀를 얼마나 흔들 수 있을지—
그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선랑은 폰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초승달이었다.
고요하고, 멀고, 슬픈 달.

그리고 그 아래, 여전한 상태 메시지.

“어둠 속을 홀로 걷는 자, 그 그림자마저 빛이 되어라.”

이제 그 문장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는 진짜로, 어둠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다음 날.
선랑은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현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선랑: 오늘 수업에서 교수님이 말한 그 VR 사례, 현주님도 관심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답장은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보통이면 몇 분 안에 확인하던 그녀였다.
이번엔 ‘읽지 않음’ 상태가, 한 시간을 넘겼다.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그 메시지를 그녀도 받았던 걸까?

그는 경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나, 혹시 현주… 무슨 이상한 연락 받은 적 있어?”

경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그냥… 세상이 워낙 그렇잖아. 이상한 DM 같은 거.”

“그러게. 요즘은 온라인이 더 무서워. 아는 사람 중에 그런 피해 본 사람도 있고.”
경희는 말하며 자신의 아이폰을 들여다봤다.

뉴스 피드에 떠 있는 기사 제목들.
'N번방 재현 시도', '딥페이크 유포', '작가 사생활 유출'—
순간, 선랑의 심장이 철렁했다.


그날 저녁.
현주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반응이 왔다.

그가 평소처럼 보내던 메시지에,
현주는 이모티콘 하나로 답을 대신했다.

강렬한 붉은색.
날카로운 표정.
그리고,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감정.

그녀는 이모티콘을 거의 쓰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것도 저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선랑은 재빨리 타이핑했다.

[현주야,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읽지 않음.
10분, 30분, 한 시간이 지나도 읽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초승달이 사라지고,
온통 검은색.
빛 하나 없는 텅 빈 이미지.
그리고 상태 메시지 역시 사라졌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졌다.


선랑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도 들리지 않고, 곧장 꺼진 상태라는 안내음.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익명의 메시지.
그 그림자 같은 말.
그리고 지금, 사라진 현주.

모든 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경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누나, 현주… 이상해. 카톡 프로필이 바뀌었어. 전화도 안 돼.”

“뭐? 진짜야? 아침까진 괜찮았는데…”

경희 역시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날 밤.
선랑은 밤새 스마트폰으로 현주의 과거를 검색했다.

'김현주 미디어 아트', '김현주 공모전', '김현주 사건'…

그리고 오래된 한 게시글.
제목은 이랬다.

‘충격! 신인작가 김현주의 숨겨진 진실?’

그 안에는 조작된 사진, 왜곡된 이야기,
비방과 조롱이 섞인 악성 댓글이 끝도 없이 달려 있었다.

그녀가 당한 건 단순한 악플이 아니었다.
온라인 마녀사냥.

그리고 게시글에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암시가 있었다.
'그때 그 일만 없었어도…', '자업자득이지.'

선랑은 숨을 들이켰다.
현주가 감췄던 과거.
그녀의 ‘그림자’는 그런 것이었다.


그는 멍하니 앉아,
검게 닫힌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바라보았다.

빛은 사라졌고,
그녀는 스스로 다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 어둠 속에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는 결심했다.

728x90
반응형